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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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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날짜 2017-10-08
설교본문 요한복음 14:1-6
설교자 김영찬 목사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4:1-6

 

(요한복음 14:1-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서론

           여러분은 길을 잃어 버린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딸이 고등학교때 합창을 했는데 라이드를 해 주고 나서 숲을 걷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day light saving기간이 끝나고 시간이 변경된 줄 모르고 걷다가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숲 속에서 어두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둠 속에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까스로 길을 따라 숲을 빠져 나온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결혼하기 전에 아내에게 부모님 산소에 데리고 갔는데 산소 주위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곳은 길도 있었고 낮이었지만 산속이고 당시에 핸드폰도 없는 시대라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헤메다가 마침 지나가는 차에 도움을 받아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니라 아들 평강이를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잃어 버려서 정말 정신없이 찾아 헤메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둠 때문이든, 길을 몰라서든 길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공포스럽고 위험한 것입니다.

            

 

본론) 첫째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이 땅을 살아가는 수 많은 인생들은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이며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으며 결국 죽음의 길, 지옥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 전에 제자들은 두려움과 염려 걱정에 쌓였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주님은 본문 1-4절에서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에 늘 의심이 많았던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도마가 예수님께 우리가 그 길을 어찌 알겠삽니까?”라고 묻듯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가는 길,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 구원의 길을 알겠는가?라고 물으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마서 3:25절의 말씀처럼 죄를 지었기 하나님께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9:36절의 말씀처럼 인생들은 목자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마가복음 6:34)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했습니다.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은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한다고 할 때 유리라는 말은 목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흩어졌다, 방황한다는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양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동물 중에 하나입니다. 목자가 없는 양은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양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허둥대다가 이리나 늑대와 같은 동물에게 먹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우리 인생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굉장이 똑똑한 것 같고 아주 힘이 센 것 같고 매우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약하기 그지 없고 천지 분간을 하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6절에서 하나님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시고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그리고 그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로 오셨고 우리를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23편은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여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23:1, 6)는 고백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아서 여호와의 집 즉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영원히 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서는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1-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 죄를 사하시려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길을 잃어 버린 한 양을 찾아 나머지 아흔 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찾도록 찾다가 결국 찾아서 그 기쁨을 어깨에 양을 메고 돌아와 친구들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하는 목자의 모습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길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는 구원의 길을 제시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의 모하메드는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사람들은 모하메드를 최고의 선지자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모세가 최고의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제시한 율법을 따르고 행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들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그리고 유교에서는 길을 의미하는 도()를 중요시했는데 중용이 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중용이라는 것은 이것에도 저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수 만가지의 조건들이 있는데 그 모든 조건들의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간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시타르타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 어느 것도 아닌 것이 도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무의 경지에 이르라고 가르쳤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경제적 정의를 이고 공산당의 독재 정치체제를 통해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이루면 유토피아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황장엽씨가 시작하여 김정일가 완성한 주체사상은 거기에다 어버이 수령을 중심으로한 공산당 독제 정치체제를 통해 유토피아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 저것이 구원의 길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인 자신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선지자들과 다른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길을 가르쳐 주는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도 감히 자기 자신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 자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기 자신이 길, () 자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있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그는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표현을 거의 서신서에 수 없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짧은 에베소서에서만 해도 27번을 사용했습니다. 1장에서만 해도 13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하는 모든 주장과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그의 말의 기초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강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복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은 어떤 목적지로 인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을 차를 타고 올라타면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그 목적지로 향하고 싶지 않으면 길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에 속하여 그 길 위에서 행하는 한 그 목적지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신데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하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기만 하고 그 안에서 행하기만 하면 저절로 우리는 하나님께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구주가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어떤 길에 들어서냐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몇 가지 선한 일을 행하냐 안 행하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좀더 우리가 인격적으로 의로우냐 의롭지 못하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저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서 성실히 일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충직하게 일한다고 합시다. 그가 성실하고 정직하고 인격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그는 열심과 선함은 결국 김정은 정권을 더욱 더 강화 시킬 뿐입니다. 해적선에서 타고 해적들의 식사를 담당하며 열심히 그리고 정직히 일한며 살아간다고 하면 해적들을 강화시킬 뿐입니다.

시편 1 1절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악인의 길에서 걸어가거나 서거나 앉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인의 길을 떠나는 자라고 했습니다. 결코 악인의 길 위에 걷거나 서거나 앉아 있다면 복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편 1편은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시편 1:6)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 그 이상입니다. 길의 문제입니다 악인의 길에 서 있느냐 의인의 길에 길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 입니다. 악인과 의인, 복있는 사람과 저주 받은 사람의 차이는 길의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의미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있으면,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면 그것이 의의 길이요 그것이 복된 사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의롭고 모든 것이 복된 것이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는 모든 것이 악하고 모든 것이 저주의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네째로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했는데 길에 있어서 중요한 두번째 문제는 그러면 그 길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여러 길 중에 하나이냐 아니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이시대의 굉장히 큰 이슈가 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로 가는 수 많은 길 중에 하나라고 믿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은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주장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은 여러 길 중에 한 길(a way)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the way)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바로 그 유일한 길이신 것입니다 (Our Lord is the road).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동일하게 전했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과 핍박의 위협속에서도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다른 그 어떤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른 그 어떤 성인이나 그 어떤 위인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이 절대 절명의 명제, 절대 절명의 복음 앞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유일한 길이라는 이 선포 앞에 무릎 꿇고 인정을 하지 않든 아니면 거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같은 공간에 고신의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 학생들 중에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전도했습니다. 하루는 해질녁에 한 학생이 창문 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고 있었습니다.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 학생은 귀찮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학생과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성경 한 구절만 읽어 주고 가겠다고 하고 요한복음 14:6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그 학생의 얼굴이 얼어 붙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 학생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깊은 고민 속에서 어둠 속으로 떠나갔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 그 학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생의 표정이나 행동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예수님의 이 도전적 말씀 앞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목자없이 길을 잃어 헤메이며 두려워 떨고 있는 어린양과 같습니다. 그러한 인생들을 위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찾도록 찾으시며 여호와의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영원히 거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길을 제시해 주거나 가르키는 표지판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는 길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복된 길이십니다. 그 안에 있으면 나가도 복 들어가도 복이지만 그 밖에 있으면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러 길 중에 하나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부디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복된 성도님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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