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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교회

인간의 다섯가지 약한 부분(4)-명예에 대한 애착

 

사람은 자기 존중감을 가질 때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의미를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그것과는 상반되게도 부모에게 책망을 받거나 다른 사람과 여러가지로 비교하면서 존중감이 무너지고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기 존중감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즉 애착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러한 우리의 애착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우리를 시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면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기 전에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천사가 하나님 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사단이 된 것처럼(이사야 14:12-15) 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창세기 3:5)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능력이 많아 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과 같이 높아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높아지려는 명예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심각하게 다룬 부분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hypocrisy 위선)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하였습니다(마태복음 6장과 25장). 기도의 진정한 대상인 하나님이나 구제의 대상인 이웃이나 금식의 대상인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 줄 것, 인정해 줄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외식을 그 어떤 죄악보다 심각한 죄악으로 다루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바른 행동이나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돈을 사랑하고 욕심을 부리면 악에 빠지듯이 명예를 추구하고 따라가면 반드시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되고 결국 거짓과 불의한 길로 발을 내 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으로 좇아 온 정욕을 세 가지로 말씀하실 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the pride of life)이라고 요약했습니다(요한일서 2:16). 이 땅의 삶에 대해 자랑스럽고 당당한 사람이 멋진 것으로 묘사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스팩, 물질의 스팩, 가문의 스팩….. 온갖 스팩으로 치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땅에서의 삶에 대한 자랑은 자칫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만하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오직 사람들이 모르는 은밀한 중에서 계시며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마음과 일들을 판단하고 은밀한 중에 갚아 주시는 하나님으로 부터(마태복음 6:6) 인정 받는 정말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요한일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김영찬 목사 드림